- [과학풍수]
- 장풍·득수 겸비하면 부귀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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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제의 묘 답사…원활한 수세로 전형적 유혈 혈장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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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정공 정제(鄭堤)의 묘소가 있는 이곳은 서기 1458년 세조 4년 왕께서 좌찬성 문절공(左贊成 文節公) 정수충공(鄭守忠公)에게 아버지인 찬성공의 묘소가 계신 이곳의 산림전토(山林田土)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또 서기 1469년 예종 원년에 문절공이 타계하자 나라에서 이곳에 예장하고 주변 땅을 왕이 사패지로 한 유서 깊은 곳이다.
이 묘소는 대구에서 유명한 동화사와 갓바위 방면으로 갈라지는 백안 삼거리에서 동화사 방면으로 조금만 가다 동화천 상류 건너 산굽이를 돌면 하동정씨(河東鄭氏) 시조묘소라는 큰 표지석이 나타난다. 길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제각 청백제와 만취헌이 있고, 그 바로 뒷산에 하동정씨 시조인 고려 좌정승 정응(鄭膺)과 8세(世) 아홉 분의 사단(祀壇)과 묘소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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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4994584)
- ▲ 정제 선생의 묘역 및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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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혈장에 대한 지형과 지질적 특성을 보면, 먼저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말엽 불국사통(화강암)이며, 주산과 안산, 지질은 모두 불국사통(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묘소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는 구릉지의 평탄한 산록에 발달하고 있어 형태상 산록완사면(약 230m)에 해당하고 혈형은 유혈이다.
정제의 묘의 지형적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지리적 위치와 국세(局勢)에 대해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용맥을 살펴보면 멀리 백두대간에 이어 낙동정맥을 따라 행룡하던 용이 낙맥하여 보현산(1,124m)을 크게 기봉하였다. 다시 서북 방향으로 돌려 몇 차례 과협을 거쳐 행룡하다가 방각산(604.6m)을 기봉한다. 다시 서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질매재를 넘어 방가산(755.7m)→화산(828.1m)→갑령재(469.1m)→시루봉(714m)→팔공산(1,192.3m)→동봉(1,152m)→염불봉(1,121m)을 거쳐 신령재를 과협으로 넘어 노적봉(露積峰·891m)과 관봉(冠峰·853m)을 차례로 기봉한다. 이 봉우리가 소조산이다. 소조산에서 남서쪽으로 크게 낙맥하여 617m봉을 거쳐 천전은맥(穿田隱脈)으로 이어져 도선산(都先山·328m)을 다시 기봉한다.
- ▲ 정제 선생의 묘소와 정수충 묘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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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좌정승 정응과 후세 9분 묘 모셔
도선산에서 분지하여 좌측으로 지맥이 하나 뻗어나가고, 우측으로 주룡은 잠시 행진하다가 다시 좌우의 분지로 벌린 후 천심(穿心)하여 흘러온 용맥이 산진수회(山盡水回)하는 곳에 이르러 혈장을 갖추었다.
이 혈장에 사헌부 감찰 증 의정부(贈 議政府) 좌찬성 정제공의 묘소가 있고, 그 바로 아래에는 아들인 좌찬성 문절공 정수충 공의 묘소가 있다.
혈장과 혈의 형태 내룡을 측정해 보니 팔공산 관봉(852m)에서 크게 낙맥하여 과협한 후 기봉한 도선산에서 자계(子癸)룡으로 행룡하여 다시 과협과 기봉을 하면서 축간룡(丑艮龍)→인갑룡(寅甲龍)→진손룡(辰巽龍)→인갑룡(寅甲龍)→축간룡(丑艮龍)으로 위이 행룡하다가 임감룡(壬坎龍)으로 입수하여 결인처를 만나 살기와 물을 모두 털어버리고 좌우 지각을 벌려 혈장을 갖추었다. 즉, 기봉과 과협으로 계속 음양합룡으로 내려오다가 우선(양룡)으로 입수하여 내룡이 합법룡인 생룡이다. 그러므로 주산에서부터 혈장까지 운행(통맥)이 잘 이루어진 곳이다.
- ▲ 정제 선생의 묘소 위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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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로 혈장 후 입수1절한 용이 만두(도두)에 이르러 좌우측으로 개구를 하여 축자미향(丑坐未向)이나 간좌곤향(艮坐坤向)으로 용사하도록 혈의 방향이 정해져 있는 곳이다. 이곳 묘소에서 나경을 이용하여 좌향을 측정해본 결과 간좌곤향으로 재혈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 묘소는 당시 유명한 명사에 의해 재혈된 곳이라 판단된다.
그러나 혈은 혈장 후 입수1절에서 결인하여 기를 속기한 후 좌우 분지를 만들고 그 바로 아래에 형성되는 것이므로, 이를 적용하면 하동정공 제의 묘소는 혈구자리보다 살짝 아래로 내려온 자리에 재혈되어 있어 아쉬움으로 남았다.
혈장의 형태는 혈의 사상(四象) 중에서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젖가슴과 같은 혈형인 유혈(乳穴·또는 음혈)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런 유혈의 형태를 일명 옥등괘벽혈(玉燈掛壁穴)이라 한다. 유형(乳形)의 혈에서는 혈을 맺기 위해 결인 속기한 후 혈장으로 들어오는 입수맥이 와혈이나 겸혈에 비해 다소 좁게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인데, 현장답사에서 입수맥을 보면 와혈 및 겸혈의 입수맥 보다는 좁게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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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백호 적당한 거리와 높이로 혈장 감싸
혈장의 구성요소에 대해 살펴보면 승금(원훈)은 뚜렷이 잘 나타나 있으나 나머지 인목과 상수 및 혈토는 이미 묘소가 놓여져 있어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혈장 아래 혈기를 받치고 있는 전순(원훈)과 여기가 잘 갖추어져 있는 혈장이 잘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사격(砂格) 사격(砂格)을 살펴보면 유혈은 돌출된 곳에 혈장이 만들어져 있으므로 바람에 노출되기 쉽다. 그러므로 반드시 전후, 좌우의 현무, 주작, 청룡, 백호가 혈장을 잘 둘러싸고 유정하게 감싸주어야 혈기가 설기되지 않고 잘 보존되는 법이다. 이곳 혈장은 현무봉이 다소 멀어서 약해 보인다. 그러나 안산(案山)은 다소 가까운 느낌은 있지만 적당한 높이에서 혈장을 향해 고개 숙여 조배(朝拜)하는 형상으로 잘 조응하고 있어 완전한 장풍(藏風)국세를 갖추고 있다. 또한 안산 내에 혈장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보기 좋은 옥인석이 앞을 비추고 있어 더욱 좋은 영향을 미치는 혈장이라 하겠다.
- ▲ 정제 선생의 묘소의 위치 및 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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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25,000과 지형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청룡과 백호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는 적당한 높이와 거리로 혈장을 유정하게 감싸주고 있어 장풍은 물론 안정감도 있다. 더불어 외청룡과 외백호까지 좌우에서 휘감고 있어 더욱 길하다. 또한 안산도 적당한 거리와 높이로 수두금형을 이루어 혈장을 조응하고 있다.
비록 아름다운 사격이 있어도 혈처를 배반하거나 파상되고 사사(射砂)나 충사(沖砂), 그리고 압사 등이 있으면 흉화를 가져다주게 되는데, 이곳은 대체로 사격이 잘 짜여져 있다.
혈장 내 정수충 묘소 아래에 전순(氈脣) 또는 원훈(圓暈)이 잘 나타나 있다. 자세히 보면 아버지 정제 묘의 여기인 전순에 해당하는 곳을 파혈하여 아들 정수충의 묘소가 놓여 있다. 그 아래에 있는 정수충 묘소는 유형 혈의 진혈을 증표할 수 있는 여기가 뭉쳐진 전순(또는 원훈)이 강하게 받치고 있다.
- ▲ 정제 선생 묘소의 1:25,000 지형도(왼쪽 하단 원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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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水勢) 수세를 살펴보면 먼저 외수는 도선산 좌측을 감싸고 흐르는 물이 안산을 감고 흐르는 물과 내명당에서 흐르는 물과 합수하여 흐르다가 다시 동화천 상류에서 흐르는 물과 다시 합수하여 동화천으로 흐르고 있고, 내수는 혈장의 청룡 백호를 따라 흘러온 물이 혈전에서 합수되어 우측 갑묘(甲卯)방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곳 정제의 묘소는 수세가 잘 교쇄(交鎖)되어 있다. 그러므로 장풍과 득수가 잘 겸비한 곳이다. 또한 전형적인 유형(乳形)의 혈장을 잘 갖추고 있다.
이런 곳을 가리켜 ‘산래수회면 귀수이재(山來水回면 貴壽而財)’라 하여 산이 내려오고 물이 돌아들면 부귀와 수복을 누린다. 특히 안산의 산형이 금성체에 해당하고 주변 사격들 또한 부봉들이 있어 후손들에게 부를 가져다준다는 곳이다. 청룡 백호가 조금은 낮은 느낌은 있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혈장을 환포하고 있어 용호를 기준한 혈증에도 부합된다.
- ▲ 산경과 수경으로 본 대동여지도 상의 정제 묘의 용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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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전순 및 원훈 혈증으로 정수충 묘소 아래 원훈과 전순 및 여기가 잘 보존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룡하면서 청룡 백호를 개장하여 대팔자가 만들어졌으며, 혈장 후 1절이 위이굴곡으로 힘차게 내려오면서 결인이 잘 되어 소팔자를 이루었다. 또 혈판 내의 하수수(鰕鬚水)까지 합쳐 삼분하여 혈전에서 삼합하니 분합 혈증 또한 잘 적용된 곳이다. 이런 삼분삼합 혈증은 혈을 찾는 비결이므로 혈장을 살필 때 반드시 확인해야할 내용이다.
또한 현무와 안산, 청룡과 백호 사이를 열십자로 그려보면 가운데에 해당하는 지점에 묘가 있어 천심십도에 의한 혈증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유명대지를 답산하여 조사해보면 앞서 설명한 여러 가지 혈증을 함께 적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 현장답사에 대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풍수적 관점에서 살펴본 내용임으로 다른 목적은 전혀 없으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 윤태중 풍수지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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