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8. 16:28ㆍ대한민국 가문 탐구
안동권씨(安東權氏)
시조 : 권행(權幸)
시조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예로 본명은 김행으로 안동
김씨이다.
권행은 신라말 경애왕때 고창(안동)의 별장을 지내던중 신라가 극도로 부패하고 잇단 민란으로 국운이 기울어가자 927년(신라
경순왕 원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입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살해한다. 이에 격분한 권행은 930년(경순왕 4년)에 김선평, 장정필과 함께
향병을 모으고 태조 왕건을 도와 고창군에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전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다.
당시 고창군은
후삼국의 전략상 중요지역이었다. 이곳에 있었던 고창전투의 승리는 후백제의 멸망과 신라의 항복 등 삼국통일에 큰 영향을 준 싸움이었다. 고창에서
이들 세사람의 도움으로 승리함으로서 열세에 있던 태조 왕건이 우세해질 수 있었다.
그후 태조가 크게 기뻐하며 "능히 기미에 밝고 권도에
통달 하였다(能炳機達權)" 라며 권씨 성과 벼슬을 삼한벽상아부공신 삼중대광 태사로 제수한 후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고 식읍으로 하사하였다.
그래서 후손들이 안동을 본관으로 하였다.
시조 권행의 묘소는 경북 안동군 서후면 성곡리 천등산 능골에 있으며 향사는 매년 한식일과
10월 중에 한다.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시조 권행과 김선평, 장정필을 모시기 위해 983년(고려 성종 2년)에 세운 삼태사묘는 경북
안동시 북문동 24번지에 있으며 매년 2월과 8월에 제향한다.
[ 계파 ] - 전체 계보도 보기
검교공파
광석파
군기감공파
동정공파
별장공파
복야공파
부정공파
부호장공파
추공파
수중공파
시중공파
좌윤공파
중윤공파
추밀공파
[ 대표적 인물 ]
고려
개국과 함께 이땅에 뿌리를 내린 안동권씨는 무수한 인물들 을 배출한다. 고려시대 추밀원부사공을 지낸 권수평(權守平)은 고려사에 청빈한 관리의
표상으로 기록된 인물,그의 아들 권위는 태자의 태사로 권씨가문 최초로 충헌(忠憲)이란 시호를 받은인물이며, 권수평의 증손이며 찬성사 권단의
아들인 권부(權溥)는 자신을 포함해 그의 아들 5형제와 그의 사 위 3명이 모두 군(君)에 봉해져서 명성을 떨쳤다. 당대9봉군(當代九封君)은 역
사상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것이 가문의 자랑이다.
조선시대에 들어 서면서 안동권씨는 3백59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여 찬란한 꽃 을
피운다.
·권근(近, 1352~1409) : 호는 양촌(陽村). 시호는 문충(文忠). 이색과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고,
고려 공민왕 때 17세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고려 우왕 때 성균 대사성, 예의판서 등을 역임. 조선 태조 때 사병폐지를 주장하여 왕권확립에 공을
세웠다. 예문관 대제학, 대사성, 의정부 찬성사 등을 역임하였다. 왕명으로 '동국사략'을 편찬하고, '입학도설'은 후에 이황, 장현광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밖의 저서로는 양촌집, 사서오경구결 등이 있다.
·권제(蹄, 1387~1445) : 권근의 둘째 아들. 호는
지재(止齎), 시호는 문경(文景). 태종 때 집현전 부제학, 한성부윤을 지내고, 세종때(1429년) 명나라에 진헌사로 다녀와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다. 1435년 이조판서에 승진, 1436년 '동국연대'를 편찬하고, 다음해에 예조판서를 지내고, 지중추원사, 지춘추원사 등을 지냄.
1440년 '고려사' 편찬에 참여, 1445년(세종 27년)우찬성이 되어 정인지, 안지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를 지어 왕에게 바침.
·권벌(1478~1548) : 시호는 충정. 호는 충재(沖齎). 고려 중종때 예조판서를 지냄. 선조초에 좌의정에 추증됨.
·권철(轍, 1503~1578) : 권율의 아버지. 명종때 3정승을 두루 지며 오랜 기간 정권에 있었 으나 아무도 그의 허물을
말하는 이가 없을 정도 이었다.
·권율(慄, 1537~1592) : 호는 만취당. 시호는 충장. 영의정 권철의 아들. 임진왜란 때
광주 목사로 금산군 이산사에서 왜군을 대파, 전라도 순찰사로 수원 독왕산성에서 적을 대파하고, 행주산성에서 3만 대군과 싸워 적병 2만4천명의
사상자를 내게한 행주대첩의 공을 세워 도원수에 오르고 '행주치마'의 유래를 낳음. 정유재란에서도 공을 많이 세워 죽은 후에 영의정에 추증됨.
·권협(1542~1618) : 시호는 충정. 임진왜란 때 장령으로 서울 사수를 주장. 1597년 정유재란 때 고급사로 명나라에가서
원나라 군사를 끌어들이는데 성공, 귀국후 호조참의에 오르고 1604년 길창군에 봉해짐. 1607년 예조판서에 올랐으나 광해군 때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함.
·권상하(尙夏, 1641~1721) : 호는 수암(遂菴). 시호는 문순(文純). 조선의 학자. 송시열의 수제자.
송시열이 제주에서 사약을 받고 죽게되자 이별을 고하고 의복과 책을 유품으로 받음. 숙종이 총애하여 우의정, 좌의정에 임명하였으나 모두 사양함.
이이, 송시열로 계승된 기호학파의 지도자임. 글씨에도 뛰어남.
·권일신(日身, ?~1791) : 조선시대의 천주교인. 교명은
프란시스 자비에르. 실학자인 안정복(安鼎福)의 사위. 남인의 학자로 양명학(陽明學)을 연구하다 1782년(정조 6년) 이벽(李蘗)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 1782년 청나라에서 영세를 받은 이승훈(李承薰)에게 최초로 영세를 받았다. 1787년 지금의 명동성당(1898년 축성) 부근
명례방(明禮坊)에서 이승훈, 정약전(丁若銓) 등 조선의 교인들이 모여 직제를 결성하여 조선천주교회를 창립, 주교가 되어 1789년 교우
우모(禹某)를 북경에 보내 북경에온 신부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1791년 신해박해 때 이승훈과 함께 제주도로 귀양을 갔으나 노모를 생각하여
신앙에 동요가 생겨 배교(背敎)했다.
[ 항렬표 ]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병(丙)
중(重)
태(泰)
영(寧)
오(五)
혁(赫)
순(純)
용(容)
구(九)
승(升)
41세
42세
43세
44세
45세
46세
47세
48세
49세
50세
일(一)
원(元)
전(全)
택(澤)
서(書)
명(溟)
칠(七)
준(駿)
욱(旭)
갑(甲)
51세
52세
53세
54세
55세
56세
57세
58세
59세
60세
의(懿)
항(恒)
옥(玉)
덕(德)
조(肇)
경(京)
세(世)
팔(八)
집(執)
구(求)
[ 족보 발행 ]
·성화보 : 1476년(조선 성종 7년) -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
·을사보 : 1604년(조선 선조 38년)
·갑오보 : 1654년(조선 효종 5년)
·신사보 :
1701년(조선 숙종 27년)
·갑인보 : 1734년(조선 영조 10년)
·후갑인보 : 1794년(조선 정조 18년)
·정미보 : 1907년(조선 순조 1년)
·신축보 : 1961년
558,574명이 있다.(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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