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부여가 있을까요? 그리고 국명 변경과 명도전
지금가지는 중국 사서와 자료를 둘러 보았습니다.
이제 '단군 세기'를 볼까요?
임승국님, 안경전님 번역입니다.
BC 1300년 경으로 돌아가니, 당연히 연(燕)이란 존재 자체도 없습니다. 당연히 기자 조선도 없었습니다.
-진리이고 팩트입니다.-
98쪽, 정신세계사
1. 21세 단군 단군 소태
BC 1286년전
이에 우현왕은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사냥족 수천을 이끌고 마침내 부여의 신궁에서 즉위하였다.
2. 22세 단군 색불루
BC 1285 년
11월 몸소 구한의 군사를 이끌고 여러 차례 싸워 은나라 서울을 격파하고 곧 화친하였으나 또 다시 크게 싸워 이를 쳐 부쉈다. 이듬해 2월 이들을 추격하여 황하 주변에서 승전의 축하를 받고 변한 백성들을 회대의 땅으로 옮겨 그들로 하여금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게하니, 나라의 위세가 떨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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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조선 최전선이 황하 주변이란 사실과 그 국가 이름을 부여라 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부여는 제가 명한 '고(古) 부여'이자, '중원 부여'입니다.
이런 고 부여국-->춘추의 선우-->중산
고부여국을 그러면 후대 중원에서 '북적(백적,적적,장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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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단군 세기 내용은 고조선 연맹국 중 부여국 색부루가 우현왕이었다가 아예 단군(단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여국이 고조선 연맹국 중가장 중심 국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게서 22쪽
그리고 BC 425년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라 바꿉니다.
# 명도전 시기와 거의 일치하는 시점에 우리는 국호를 '조선'에서 '부여'로 바꿉니다.
https://blog.daum.net/daesabu/18328675
부여를 소나무로 보는 견해 그리고 '밝'의 '부여'
부여 국명을 소나무로 보는 견해 일면 일리가 있어 보이고, 비파형 동검도 '소나무'로 볼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하늘의 소나무, 칠성, 바다의 배 모두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위 논문에서 '
blog.daum.net
강성하고 부유한 나라임을 다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내에게는 언제나 직업이 있었고 여자에게는 좋은 짝이 있었으면 집집마다 재물이 쌓였다. 산엔 도적이 없고 들엔 굶주린 자가 없으며 거문고 노랫소리가 온 누리에 가득했다.
지금 최고 선진국 보다 더 나은 국가를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참고: 이진우님 의
[옴니버스 한국사] 제7장.부여족은 어디서 왔나? (1) /Where the Buyeo(Fuyu) tribe came from ?
12분 발조선(發朝鮮), 발은 부여를 말한다.....
정확하지요.